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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리~ 2019.01.17 00:25

나의 고전영화 탐방기

 

춘향 1

 

생각만 해도 미소가 지그시 그려지고, 설렘에 하루 종일 그리워지는 사랑의 흔적!

 

내가 자각한 첫 염정소설(艶情小說),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아는 고전,

나의 고전영화 탐방기 첫 영화는 춘향전이다.

왜 하필?

 

이 글의 여정을 따라 동행한다면 요 탐방기의 첫 영화로 적격이라는 생각이 들리라. 국악의 도시였던 나의 고향은 동편제로 유명했다. 하지만 영화 ‘서편제’를 보고 국악에 빠진 나는 친구 둘을 회유해 가야금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나와 친구 하난 음악적 재능이 없음을 확인하고는 일 년정도 하고는 그만 두었지만 한 친구는 가야금 전공을 해서 산조가야금이며 민요가야금을 집에 늘어놓고 연주 했다. 그 결에 함께한 살풀이 춤은 심장을 멎게 하고 눈을 뗄 수 없게 했고 선생님 따라 들었던 심청가는 세상에 없는 비장미로 사람을 울렸다. 춘향전은 창극으로 만났다. 춘향과 몽룡보다 방자와 월매같은 조연의 해학적 연기가 극의 재미를 더했고 그 유쾌함에 관객은 하나가 됐다.

 

 

1923년 고전소설 춘향전의 영화화

 

1923년 한국의 극장은 고전고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무성영화 인기의 서막을 올렸다. 일본인 하야카와 고슈早川孤舟가 조선인이 좋아하는 작품인 춘향전을 각색, 감독하였다. 동서고문을 막론하고 ‘사랑’이라는 주제는 환영할 만 했다. 이 영화는 조선인 감독에게 자극제가 되었고 조선인 감독에 의한 영화도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1935년 조선최초의 유성영화 춘향전

 

1927년 10월 미국의 재즈싱어는 최초의 유성영화로 기록된다. 조선의 영화도 유성영화의 시대가 시작되었고 조선 땅에도 외국에서 유입된 유성영화 기술에 우리 기술을 더해 유성영화를 만들었다. 그 시작점에도 춘향전이 있었다. 1935년 이명우 감독의 춘향전이다. 춘향이 역할은 문예봉, 이몽룡 역은 한일송이 맡았다.

 

                                                                               1955년 사극열풍의 시작

 

 

일제시대를 거쳐 한국전쟁을 겪으며 민중은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고 척박한 영화판도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1955년 이규환감독의 춘향전은 ‘한국영화 중흥의 신호탄’이란 평가를 받으며 한국영화 사극 붐을 일으켰으며 한국영화 제작편수도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당시 인기 배우였던 조미령이 춘향역할을 신인이었던 이민이 이몽룡 역할을 맡았으며 국도극장에서 개봉하여 15만 명의 관객이 들며 영화 흥행 신기록을 기록했다.

 

 

1958년 개봉한 안종화 감독의 춘향전이다. 이 영화는 최초의 16mm 컬러영화로 기록되고 있다.

 

아쉽지만 지금껏 소개한 춘향전은 원본필름이 남아 있지 않아 우리가 지금은 볼 수 없는 영화이다. 몇 장 남은 스틸 사진이 영화를 복기 할 수 있는 유일한 흔적이다. 2007년 단성사를 운영했던 오기윤의 유족이 보관하던 필름 캔이 세상의 빛을 보게된다. 필름 캔에는 세동무, 아리랑, 장한몽, 무지개란 이름이 적혀있었다. 나운규의 그 아리랑?? 많은 사람들이 흥분했지만 필름 제목은 1934년 안종화 감독의 청춘의 십자로였다. 현재 한국영화 중 필름이 발굴된 가장 오래된 것이다. 1955년 이규환감독의 스킬 컷이 저리도 선명한데 영화를 볼 수 가 없다는 생각에 서운하기도 하지만 어느 날 발길 따라 갔던 여행지에서 뜻하지 않게 발굴하게 될지 모를 고전영화를 상상하면 조금은 채워지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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